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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절편에 '대추문양'을 새긴 이유
목공예 명장 김규석씨 "떡살 살리는 게 전통문양 지키는 일"
▲ 김규석 씨가 새긴 떡살 문양들. 여기에는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수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직하게 수입품으로만 유통된다면….
문제는 수입품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거죠. 그게 국내산 박힌 돌까지도 송두리째 몽땅 뽑아버리거든요."
우리 고유의 떡살을 만들고 있는 목공예 명장 김규석(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씨의 얘기다. 버젓이 수입돼 들어온 떡살이 전라도에선 '경상도에서 만든 것'으로, 경상도에선 '전라도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깎은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의욕마저 꺾어버리기 일쑤다.
"떡살도 그래요.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 지켜가야죠. 누군가는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을 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누군가 우리 것을 끌고 갈 수 있도록 토대는 만들어 줘야죠. 그건 한 개인이 해줄 수 없잖아요. 우리 사회의 몫이죠."
▲ 절편과 떡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떡이 군침 돌게 한다
▲ 떡살의 문양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김규석 씨가 새긴 도장 모양의 떡살이다.
'떡 중의 떡은 절편'이라고 한다. 떡 가운데 절편을 으뜸으로 치는 것은 절편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의 유래도 여기다. 우리 조상들은 이 떡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비는 뜻도 무늬에 새겼다.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여도 그 안에는 천태만상이 다 담겨 있다. 산과 들에 가득한 동물과 생기발랄한 식물이 있다. 하늘의 별과 구름, 만물의 근원인 음양의 이치도 들어있다.
생일 떡에 거북무늬를, 혼례 떡에 석류나 포도, 대추 문양을 새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절편은 절편대로, 도장떡은 도장떡대로 의미에 맞는 떡살 문양을 새겼다. 그 종류만도 1000여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일 뿐. 국적도 분명치 않는 외국산 떡살이 절편의 무늬를 찍어대고 있다.
"우리 차례상과 제사상에 오르는 떡의 문양이 외국산에 완전히 점령당했어요. 우리 고유의 무늬도 아니고 어떤 뜻도 염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떡살에 의해서요. 차라리 아무런 문양도 찍지 않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김씨는 우리 문양이 옛 노래의 제목처럼 '번지 없는 주막'으로 변했다고 개탄한다. 그가 전통 문양에 매달리는 이유다. 떡살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떡살을 깎고 있는 김규석씨. 20년 넘게 떡살만을 직접 파고 새기고 있는 목공예 명인이다.
▲ 김규석 씨의 손끝에서 문양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씨는 우리 민족이 사용한 온갖 무늬들을 발굴, 재현해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27년 전이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연채 선생님으로부터 전통음식과 떡의 소중함을 배웠죠. 떡살 하나하나의 문양에 들어있는 깊은 뜻도 알았고요."
당시 이연채 선생의 떡살에는 깊이가 있었다. 그만큼 떡에 새겨지는 무늬도 선명했다. 선생은 남도의 전통음식과 떡살의 산증인으로 무형문화재였다. 선생의 기술을 이어받은(떡살기능 전승자 지정-노동부, 2000년) 김씨는 이것을 단순히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전통에 얽힌 주술적인 부분까지 풀어냈다. 옛 문헌을 뒤적이며 떡살에 새겨진 의미까지도 꿰뚫었다.
그렇게 해서 볼륨감 있는 떡살에다 우리 민족이 써온 여러 무늬를 발굴, 재현해냈다. 옛 문양을 토대로 현대의 염원을 담아 재창작해낸 것. 전통의 멋을 간직한 세련된 떡살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들어 한식과 차문화가 재조명됐잖아요. 그때 불티나게 팔렸죠. 근데 '반짝'이었어요. 중국산, 인도네시아산이 밀려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가격 차이가 엄청났는데요. 제가 만든 것과 비교할 때 스무 배가 넘었거든요."
▲ 김규석 씨가 깎고 있는 도장떡살. 도장 모양의 떡살은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 김규석 씨가 깎은 장방형 떡살. 얼핏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기 어렵지만 이 안에는 천태만상이 다 담겨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한길을 걸었다. 떡살 하나를 깎는데 일주일이 걸리고 한달에 몇 개 만드는 게 고작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아가 다양한 전통의 문양까지 찾아내고 있다. 조그마한 떡살 문양을 큼지막한 나무판에 옮기는 작업도 하고 있다. 우리 전통 문양의 대중화를 위해서다.
"옛날 책 표지를 만들 때 쓰던 게 능화판이고, 요즘 얘기하는 꽃편지지는 시전지판인데요. 이런 것들도 완전히 복원할 겁니다. 시대정신과 민족혼을 담은 새로운 떡살을 만드는 작업도 계속할 것이고요. 나중에 우리의 전통 문양을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쓰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작으면서도 큰 그의 소망이다. 떡살이나 다식판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담긴 문양만은 살려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떡살 문양에 담긴 그 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 손잡이가 있는 원형 떡살. 문양을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게 강점이다.
▲ 김규석 씨가 새긴 도장형 떡살. 설날 복 많이 받고 부자되라는 의미로 새긴 것이다.
이 문양이 우리 국민들한테 널리 사랑받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장판과 벽지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소중하게 쓰였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정말 소중하잖아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 전통의 떡살은 없어지고 말거든요. 문양도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누군가는 지켜가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까 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명맥이라도 유지하려고요. 누굴 탓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김씨는 전통의 문양이 후대에까지 이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지금의 현실이 어려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명맥이라도 유지돼야 그 누군가에 의해서 또 이어질 수 있기에.
▲ 김규석 씨가 떡살 전시실에서 자신이 만든 떡살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씨는 목공예명인이면서 떡살기능 전수자이다.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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