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내 집이라면….' 여행길 호텔방에 드러누우면 한번쯤 떠오르는 상념이다. 눕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침실, 물기 없이 뽀송뽀송하고 깔끔한 욕실…. 낡고 오래된 우리 집도 아늑한 호텔처럼 꾸밀 순 없을까. 집 전체를 큰돈 들여 개조하지 않아도 침실과 욕실만 잘 꾸미면 호텔 못잖은 분위기를 누릴 수 있다. 올해 인테리어 흐름도 마침 호텔의 편안함을 닮은 '힐링'이다. 지난해만 해도 주방을 서재로 꾸미고 침실에 테이블을 놓는 등 여성들을 위한 인테리어가 유행이었다. 올해 힐링은 '남성들을 집으로'가 콘셉트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인 고현실 로이데코 실장은 "올해는 휴식과 재충전을 돕는 호텔식 공간 연출로 남성들을 집에 머물게 하는 꾸미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식 인테리어를 실천한 주부들은 "인테리어가 바뀌니 부부 금실이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얗고, 깨끗하고, 간결하게'가 포인트인 호텔식 인테리어는 어떻게 따라할까.
결혼 6개월차인 조은화씨는 최근 16년 된 아파트를 클래식한 분위기로 꾸몄다. 짙은 나무색 바닥에 맞춰 고풍스런 체리목 가구를 놓은 안방은 하얀 침구로 칙칙한 분위기를 피했다. 침대 머리맡 창가엔 아사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기능을 강조한 호텔처럼 침실은 잠자는 공간 중심으로 꾸몄다. 티브이를 치우고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호접란을 놓았다. "자기 전에 남편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는 공간으로 침실을 바꾸니 티브이가 있던 때보다 대화시간이 늘었어요."
전통적인 호텔 인테리어의 특징은 '클래식'이다. 짙은 고동색의 월넛 가구에 하얀 커튼과 하얀 침구를 매치해 깨끗함과 우아함을 뽐낸다. 기능면에선 각 공간이 기본에 충실하다. 침실은 잠자는 공간, 거실은 티브이를 보며 쉬는 공간, 욕실은 씻는 공간이란 본질을 잊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소품만 배치해 좁은 공간도 넓게 쓰는 게 장점이다.
휴식·재충전 돕는 호텔식 집꾸미기 대세 호텔 같은 침실 꾸미기의 핵심은 3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침구다. 사그락거리는 하얀 호텔 침구는 인터넷 패브릭 쇼핑몰에서 '호텔침구'라는 이름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호텔침구 판매업체 데코 그랑떼의 박철규 대표는 "흔히 쓰는 솜과 이불커버가 붙은 누빔이불과 달리 솜과 이불커버를 분리한 것이 호텔침구"라며 "일반솜 대신 거위털을 넣으면 푹신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급호텔에선 면 60수 원단을 쓰는 스위트룸 외에 보통은 면 40수 원단 침구를 쓴다. 촉감은 60수보다 떨어져도 내구성이 강해 자주 세탁할 수 있다. 사락거리는 이불 느낌은 풀을 먹여야 생기므로 집에서 따라하긴 어렵다. 때가 잘 타 부담스러운 흰색 침구 대신 연한 회색·베이지색 침구를 써도 좋다.
호텔침구에 암막커튼과 조명까지 갖추면 호텔 같은 침실이 대략 완성된 셈. 암막커튼은 원단이 도톰해 빛 차단 말고도 외풍을 막는 효과가 있다. 침실을 잠자는 데 충실하게 하려면 직접조명보다는 은은한 간접조명이 좋다. 협탁이나 사이드 테이블에 놓는 예쁜 조명은 서울 을지로 조명상가나 논현동 가구거리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테리어 관련 일을 했던 주부 송혜영씨는 얼마 전 이사하면서 집 안 분위기에 호텔을 끌어왔다. 암막커튼을 걸고 녹색 거위털 침구를 침대에 깔았다. 외국 인테리어잡지나 '레몬테라스' 같은 인테리어 블로그 등을 참조해 디자인을 고른 뒤, 시공업체에 인테리어 공사를 맡겼다. "침실 포인트는 액자, 조명, 꽃병 등 작은 소품을 활용해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40수 원단 흰 침구 마련, 건식 욕실 만들면 완성 호텔 욕실이 쾌적한 건, 습식 아닌 건식이기 때문이다. 결혼 10년차인 오창숙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집안 청소를 자주 못 한다. 주말에 한번 몰아서 청소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 새집을 꾸미면서 청소시간을 줄이기 위해 욕실을 건식으로 바꿨다. 바닥엔 카펫을 깔고 물때와 곰팡이가 끼는 슬리퍼를 없앴다. 욕조에는 샤워커튼을 걸었다. 바닥에 물이 흥건하지 않으니 맨발로 다녀도 뽀송뽀송했다. "일주일에 두세번 카펫 먼지 털어주고 세면대 물기만 닦아주면 되니 습식일 때보다 훨씬 편해졌다"고 오씨는 설명했다.
건식 욕실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면서 '욕실 가구'라는 개념이 생겼다. 대림바스 홍보팀 신경미 과장은 "세면대, 수납장, 샤워부스도 인테리어 취향에 따라 고르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욕실 개조 비용은 보통 200만원대다. 비데, 절수형 변기, 샤워부스, 욕조 등 옵션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수도꼭지·샤워기도 인테리어 소품이다. 호텔에서 흔히 보는 '해바라기 샤워기'(35만원대) 하나만 있어도 욕실이 그럴듯해 보인다.
화장실 개조 공사는 보통 3~7일 정도 걸린다. 대림바스,
아메리칸스탠다드 같은 욕실 전문업체에 맡기면 바닥과 벽 타일까지 평형이나 취향에 맞춰 꾸며준다. 수납장 일체형 세면대도 인기다. 세면대 아래에 수납장이 달려 있어 지저분한 세제나 청소솔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사할 때 가져갈 수 없어 돈 아깝다는 투덜거림도 이제 끝이다. 실리콘이 아닌 고무패킹(마감링) 마감재를 사용한 욕실 가구는 떼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고무패킹은 기존 실리콘이 물때가 끼고 색이 변하는 걸 방지한 새로운 마감재다.
건식 욕실로 바꾸려면 우선 샤워커튼이나 유리로 된 샤워벽을 만들어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좋다. 비교적 설치가 쉬운 샤워커튼은 마트에서 1만~2만원대면 살 수 있다. 수건을 색상별로 접어 선반에 올려두거나 유리병에 꽃을 꽂아 세면대 선반에 두는 것도 분위기 있어 보인다. 목욕가운을 벽에 걸어두는 것도 호텔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건식 욕실을 꾸민 회사원 민지은씨는 호텔 욕실의 특징을 "필요한 것만 딱딱 놓여 있는 간결함"이라고 정의했다. 오피스텔이나 전셋집 등 욕실 개조가 어려운 집은 욕실용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호텔 욕실을 흉내낼 수 있다. 민씨는 "마트에서 끼워파는 각종 욕실제품을 선반에 꽉 채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습·건식의 중간단계로 변기 아래 까는 발판도 치우란다. 슬리퍼처럼 곰팡이가 끼기 쉬워 오히려 불결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 못 고친 욕실, 청소라도 깨끗이 ⊙ 변기 청소할 때 락스 냄새가 싫다면 남은 콜라로 | 세면기나 변기 실리콘 마감재에 곰팡이가 피었다면 세제 적신 화장지나 신문지를 곰팡이 생긴 부분에 눌러놓고 다음날 수세미로 문지르면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욕실 청소 때 쓰는 락스 냄새가 싫다면 먹다 남은 콜라를 이용해도 때가 잘 지워진다.
⊙ 수도꼭지·변기레버 같은 금속은 린스와 치약으로 | 자주 손이 닿지만 잘 닦지 않게 되는 수도꼭지와 변기레버의 물때는 린스나 치약을 헝겊에 묻혀 닦으면 효과적이다. 녹슨 세면대 트랩은
베이킹파우더를 물에 녹여 수세미로 닦는다.
⊙ 악취는 원두커피 찌꺼기와 양초로 | 욕실에는 향이 진한 콘센트형 방향제보다 은은한 스프레이형 방향제를 사용하는 게 좋다. 원두커피 찌꺼기와 양초는 탈취 효과와 함께 인테리어 효과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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